2편
공포의 S 고등학교
내가 들어간 S 고등학교는 어떤 학교였을까?
서울대를 1년에 20명 이상 꾸준히 배출하고, 연세대, 고려대, 그리고 서성한이라 불리는 명문대와 육군사관학교까지 합치면 100명은 우습게 보내버리는 명문 고등학교였다.
서울대를 한 해에 20명이나 보내다니 무슨 특목고라도 되는 걸까?
전혀 아니었다.
흔하디 흔한(?) 일반 고등학교였다.
나 같은 평균 70따까리(?)도 지원만 하면 프리패스 였으니 말해 무엇 하랴.
사실은 지원자가 적어 가끔 타 지역에서 학생을 납치(?)까지 하는 이상한 학교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고등학교는 명문대를 수십 명씩 보낼 수 있었을까?
이제부터 차근차근히 알아보자.
S고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다.
[애들을 쥐 잡듯이 패지만 성적으로 화끈하게 보답하는 미친 학교]
학부모들은 좋아하지만 3년간 내리 맞아야 하는 학생으로선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는 얘들은 S고를 1지망엔 안 적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들어간 희생자였다.
하여튼 이 S고에 입학하면 첫날부터 특이한 경험을 원없이 할 수 있다.
먼저 입학식 날 공지를 읽어보면 제대로 읽은 건가 싶은 문구가 있는데
입학생들은 도시락을 2개 싸오시기 바랍니다, 라는 거다.
입학식은 그냥 집에 일찍 가는 날 아닌가?
그런데 왜 도시락을, 그것도 2개나 싸오라는 거지?
입학식이 끝나고 (집이 아닌) 교실로 들어간 후에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에게 담임이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니들 하고 싶은(?) 공부 해!”
갑자기 자습이라니, 처음 들었을 땐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점심 도시락을 먹을 때도
이따 오후엔 보내주겠지?
같은 생각을 했지만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 도시락을 먹을 땐
먹고 나서 보내 주는 건가?
같은 희망 섞인 기대를 했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요한 녀석들은 집중 못 했다는 죄로 자비 없는 빠따를 맞을 뿐.
깜빡하고 이야기 안했는데 S고에 들어가면 꼭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있다.
신체 포기 각서로 더 유명한 체벌 동의서다.
입학식 첫날 이 노예(?) 계약서에 싸인을 해야 진정한 S고등학교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나는 시골 촌뜨기처럼 어벙한 상태로 싸인을 했고 덕분에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첫날부터 빠따를 맞았다.
S 고등학교의 교육 방식은 매우 단순하다.
야간 자율 학습.
줄여 말해 이 야자를 강제로 하는 것.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전교 1등 할아버지가 와도 야자를 거부하면 전학을 가야 한다.
사교육?
학교에서 거부한다.
당시 우리 세대에선 메가스터디 강의가 핫했는데 우리한테는 그림의 떡이었다.
반에서 몇몇이 그 강의를 듣고 싶어 야자를 빼겠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건 빠따 밖에 없었다.
즉 우리는 사교육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다.
야자는 자유란 이름 그대로 매우 자유롭다.
멍 때리고 싶으면 멍 때려도 뭐라 하진 않는다.
그저 그 시간이 매우 길 뿐이다.
방학이 되면 더 길어진다.
방학이란 단어는 가정통신문에 적혀있지만 실제론 야자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목 상 자율이긴 한데 이걸 거부할 정도로 간 큰 노예(?)는 1학기가 가기도 전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전교생 자진(?) 참석이라는 기적을 매번 달성하곤 했다.
이 야간 자율 학습에는 몸으로 깨달아야 하는 법칙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다른 사람의 공부를 방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공부에 대한 질문은 물론이고 단 한 마디도 말을 걸면 안 된다.
아니, 방해 하는 행위 자체를 하면 안 된다.
나는 지우개를 빌려 달라는 손짓을 했다가 걸리는 바람에 빠따를 맞았고 그 이후로 필기구를 전쟁 나가는 군인처럼 여벌로 챙겨 다녔다.
덕분에 야자 시간엔 수백 명이 모여 있는 데도 불구하고 개미 기어가는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진풍경을 매일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지금 유투브에 올린다면 시청자들은 음소리 제거 버튼이 눌러졌는지 의심할 정도로 기이한 풍경이었다.
물론 우렁찬 빠따 소리가 나는 순간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 무시무시한 체벌에 대해 우리는 입 한 번 빵긋할 수도 없다.
우린 이미 노예계약, 아니 신체포기, 아니아니, 체벌동의서에 사인 했으니까.
야자 = 정신과 시간의 방
1학년은 아침 8시까지 등교하고 오후 세 네시부터 저녁 9시까지 야자를 해야 했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밤 10시 넘어서까지 사교육을 다니니 별 거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선생님이 말로 하는 수업을 듣는 것과 알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 건 난이도가 하늘과 땅 차이다.
선생들이 참고서를 사라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하지만 학생들은 알아서 자율적으로 참고서를 산다.
교과서만 보는 건 지겹기 때문이다.
참고서도 한 종류만 있으면 질리기 때문에 과목 별로 2-3종류는 샀던 것 같다.
덕분에 학교 앞 서점 사장님은 일년 내내 행복했지만 정작 고객인 우리 얼굴은 늘 우거지상이었다.
야자 시간에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모르면 모르는 데로 알아서 공부해야 했다.
정말 말 그대로 처절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매일 이어졌다.
지금에야 고백하자면 솔직히 이걸 내가 왜 하는 걸까, 하는 생각으로 멍 때리는 시간도 엄청 많았다.
이쯤에서 궁금할 거다.
이렇게 자율적으로(?) 스스로 학습을 하면 성적이 올라갈까?
물론 개인마다 다르다.
많이 올라가는 놈도 있고 거의 안 올라가는 놈도 있다.
당연히 나는 후자였다.
오른 점수보다 내가 맞은 빠따 수가 100배는 많았다.
그런데 웃기고도 서글픈 사실은.
성적이 떨어지는 놈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뭐 사회에 나와서야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 라는 말도 들었는데 딱히 부정할 수 없다.
하다 못해 담배 좀 피고 일진 놀이 하는 녀석도 왠만한 체대는 골라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문무를 겸비한(?) 일진도 사랑과 무자비의 빠따 앞에선 그저 그런 노예 1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녀석은 이런 학교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제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 안 맞고 지나갈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참고로 그 일진은 담배 냄새로 걸리는 바람에 복날 맞은 개처럼 뒤지게 맞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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