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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 0원으로 S대 간 썰 -5- 수능 날 일어난 기적 솔직히 나는 일찌감치 재수를 생각할 정도로 딱히 점수가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재수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었기에 조금 긴장을 풀고 수능을 봤다.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나는 언어만큼은 자신있었고 단 한 번도 시간 조절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그런데 그런 내가 막상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수능 날 시간 조절에 실패했다.좀 어렵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문을 3개나 못 본 것이다.지문 하나 당 2-3문제니 거의 8문제를 아예 보지도 못하고 찍어야 했던 것이다.이건 그냥 확률의 문제라 그냥 3번으로 통일해서 OMR 카드를 제출했다.아마 평범한 학생이라면 가장 자신있는 과목에서 이렇게 망치는 순간 멘붕이 왔을 것이다.게다가 언어 영역은 하필 가장 첫 과목이라 치명적이었다... 2024. 7. 1.
사교육비 0원으로 S대 간 썰 -4- 너도? 야 나도! 만약 내 글에 감명을 받고 곧바로 집에 콕 박혀서 공부만 하려는 학생은 그러려니 하겠지만 반대로 학부모가 자녀에게 이런 방식을 적용하려고 한다면 그건 참 멍청한 짓이다.왜냐하면 당시 S고엔 있고 자녀에겐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그것은 바로 고통을 함께 나눌 친구다.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학년이 올라가면 당연히 반도 바뀌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하지만 특이하게도 S고는 3년 내내 반을 바꾸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것은 S고의 거지 같은 정책 중 그나마 탁월한 결정이었다.일단 3년 내내 같은 놈들만 모여 있으니 딱히 새로운 친구를 사귈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다.또 3년이나 같은 얼굴을, 그것도 하루 17시간을 보고 있으니 징글징글하다 못해, 없던 동지애도 .. 2024. 7. 1.
사교육비 0원으로 S대 간 썰 -3- 빠따를 맞는 이유 빠따를 맞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빠따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말하자면야구 빠따 보다는 조선 시대 곤장을 떠올리면 된다.거기서 검처럼 길이를 적당하게 줄인 게 빠따다.빠따를 쥔 선생들은 사무라이처럼 어깨에 턱 걸치고 복도를 활보 했는데 그 포스가 가히 집행검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이 빠따가 탄생한 설은 여러 개가 있었는데 선배 중 목공소 아들 집에서 주문 제작한 거라는 썰이 가장 유력했다.웃긴 게 빠따를 제일 처음 맞은 사람도 그 목공서 아들이었다나.감히 노예, 아니 학생의 신분으로 그 빠따를 직접 잡아보진 못했지만손잡이가 두툼해서 그립감이 쩔었으리라 예상한다.두께는 거짓말 안하고 엄지손가락보다 더 두툼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주 부러졌다.하루에 수백 대를 쳐 대니 남아 날.. 2024. 7. 1.
사교육비 0원으로 S대 간 썰 -2- 2편  공포의 S 고등학교 내가 들어간 S 고등학교는 어떤 학교였을까?서울대를 1년에 20명 이상 꾸준히 배출하고, 연세대, 고려대, 그리고 서성한이라 불리는 명문대와 육군사관학교까지 합치면 100명은 우습게 보내버리는 명문 고등학교였다.서울대를 한 해에 20명이나 보내다니 무슨 특목고라도 되는 걸까?전혀 아니었다.흔하디 흔한(?) 일반 고등학교였다.나 같은 평균 70따까리(?)도 지원만 하면 프리패스 였으니 말해 무엇 하랴.사실은 지원자가 적어 가끔 타 지역에서 학생을 납치(?)까지 하는 이상한 학교였다.그렇다면 어떻게 이 고등학교는 명문대를 수십 명씩 보낼 수 있었을까?이제부터 차근차근히 알아보자. S고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다.[애들을 쥐 잡듯이 패지만 성적으로 화끈하게 보답하는 미친 학교.. 2024.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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