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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 0원으로 S대 간 썰 -3-

by 멀티84 2024. 7. 1.

 

 

빠따를 맞는 이유

 

빠따를 맞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빠따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야구 빠따 보다는 조선 시대 곤장을 떠올리면 된다.

거기서 검처럼 길이를 적당하게 줄인 게 빠따다.

빠따를 쥔 선생들은 사무라이처럼 어깨에 턱 걸치고 복도를 활보 했는데 그 포스가 가히 집행검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이 빠따가 탄생한 설은 여러 개가 있었는데 선배 중 목공소 아들 집에서 주문 제작한 거라는 썰이 가장 유력했다.

웃긴 게 빠따를 제일 처음 맞은 사람도 그 목공서 아들이었다나.

감히 노예, 아니 학생의 신분으로 그 빠따를 직접 잡아보진 못했지만

손잡이가 두툼해서 그립감이 쩔었으리라 예상한다.

두께는 거짓말 안하고 엄지손가락보다 더 두툼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주 부러졌다.

하루에 수백 대를 쳐 대니 남아 날리 가 없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목공소 사장님의 센스로 빠따는 항상 비축분이 있었기에 매가 없어 매를 못 맞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빠따를 맞는 이유는 너무 많았다.

수업 시간에 졸아서 맞고, 질문에 답 못해서 맞고, 잘못해서 맞고, 눈 마주쳐서(?) 맞고.

마지막 이유가 좀 황당할 수 있는데 문자 그대로다.

야자 시간에 선생들은 어두운 복도를 닌자처럼 조용~~히 지나가는데.

이 때 복도 쪽 창문을 바라보다 선생과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왜 안 되는 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야자 시간은 공부하는 시간이다.

->야자 시간에 복도에 있는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증거.

->잘못을 했으니 맞아야 한다.

기적의 논리가 탄생한다.

 

내 눈과 선생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선생은 그저 조용히 손짓만 한다.

그러면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에 나가 엎드려 뻗쳐를 한다.

차가운 복도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나같이 걸린 아이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에 동지애로 훈훈(?)할 뿐이다.

 

그렇게 닌자로 빙의되었던 선생이 복도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대망의 엉덩이 빠따질이 시작된다.

+9강 주문 제작 빠따의 위력 앞에 방어력이 제로에 가까운 교복은 있으나 마나다.

한 번 때릴 때마다 철썩! 하는 소리를 거의 전교생이 들을 정도였다.

그 어마어마한 소음 공해로 학교 근처에 위치한 집들이 민원을 넣을 정도였지만

자랑스런 전통을 끊기에는 힘이 부족했으니 아쉬울 뿐이다.

여담으로 나중엔 선생이 유리창을 똑똑 두드려도 쳐다보는 놈이 없을 정도였다.

똑똑 두드리면 쳐다보는 게 정상인데, 그걸 또 집중 못했다고 때리기 때문에 다들 귀머거리 시늉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약이 올랐는지 선생은 거의 특수부대나 할 법한 액션을 했는데,

교실 바깥에 폭과 높이가 1미터도 안 되는 좁은 배수로가 있었다.

당연히 사람 다니라고 만들어 놓은 곳은 아니다.

그런데 선생은 이 좁은 배수로 수십 미터를 기어가다 창문에 노크를 하는 기행을 보였다.

들려 와선 안 되는(4층이었다) 곳에서 소리가 들리자 철저히 단련된 학생들도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으니.

정말 간만에 풍년을 맞은 어부처럼 기뻐하던 선생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S고의 수업은 얼마나 특별했을까?

 

그래도 서울대를 수십 명씩 보내는 학교니 수업 내용은 특별하지 않았을까?

사실 대부분의 수업들은 내용보다 체벌 종류가 더 인상 깊은 선생들이 대다수였다.

한강 다리를 좋아하는 선생도 있었고 엉덩이보단 허벅지를 선호하는 선생도 있었고 단소로 뺨을 때리는 인간도 있었다.

아마 그치 입장에선 손으로 때리는 것보다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더 굴욕적이었다.

쓸데 없는 체벌 이야기는 그만하고 일단 수업 퀄리티에 대해 알아보자.

수많은 선생들의 수업을 들었지만 개중에 아 정말 잘 가르치시네하는 선생님은 딱 한 분이었고 대부분 수업은 다 고만고만했다.

딱히 특별하진 않았다는 말이다.

오히려 개중엔 이 정도 실력으로 선생질 하나?’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수업을 대충 하는 선생도 있었다.

예를 들어 교과서에 밑줄만 치게 하는 선생.

들어오자마자 칠판 처음부터 끝까지 쭉 판서만 20 한 다음 그냥 애들한테 베껴 쓰게 하는 선생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할 바엔 그냥 프린트물 나눠주는 게 서로 힘도 덜 들고 좋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선생은 평생을 그렇게 살았을 것이고, 거기에 대해 의문을 가하기엔 우린 너무 어렸다.

사실 프린트물 나눠주고 그냥 읽어라, 하면 자기 존재 의의도 없어지니 자괴감이 왔을 터다.

정리하자면, 대부분의 수업은 거진 다 평범했고 딱히 도움 되지도 않았다.

이걸 반대로 말하자면 좋은 수업을 받지 않아도 명문대에 갈 수 있다는 거다.

우리들은 야자를 미친듯이 싫어했지만 그 야자가 성적을 올려 줬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학교와 집이 바뀌는 마법

 

말했다시피 입학 첫날부터 도시락 두 개를 싸가서 저녁 9시까지 야자를 했다.

1학년은 아침 8 30분까지 등교하고 저녁 9시까지 야자를 했는데 학년이 올라가면 강도가 엄청 올라간다.

3학년부터는 아침 630분까지 등교를 해야 하고 저녁 1130분까지 야자를 했다.

계산해보면 24시간 중 17시간을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거다.

왜 아침 7시까지 와야 하냐면 3학년부터는 0교시 수업이 새로 생겼기 때문인데.

0교시 수업은 7시부터 시작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탁상공론인지 참 의문이다.

왜냐하면 수면 시간이 미친 듯이 짧아져서 0교시 수업은 거의 소 귀에 경읽기 수준이기 때문이다.

자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조는 순간 빠따를 맞기 때문에 졸 수도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나머지 얘들도 진짜 좀비처럼 수업을 듣고 0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바로 머리 박고 잤다.

이 살인 적인 스케줄에 대해 어떤 선생이 이런 말을 한 게 기억난다.

아니, 11시 반에 야자 끝나고, 바로 집에 가서 12시에 잔 다음 6시에 일어나면 되잖아? 6시간 자는 거니까 기본 수면 시간은 채워 주잖아?

지금 생각해도 뇌가 없는 헛소리에 대해 반박하자면.

먼저 밤 11시 반에 야자가 끝나면 당연히 대중 교통은 없다.

결국 사설 셔틀 봉고차를 이용하는데 이 봉고차가 돌아돌아 학생들을 내려주고 집에 오면 12시 반이 넘는다.

최대한 빨리 씻고 잔다고 해도 1시가 넘어서야 잘 수 있다.

그리고 셔틀 봉고를 타려면 우리 집 기준으로는 430분에 일어나야 했다.

당시 새벽에 나를 조심스레 깨우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어머니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짧은 수면 시간이니 깨우긴 너무 가엽지만, 그럼에도 깨울 수 밖에 없는 그 고통을 어린 나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일어나서 셔틀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6쯤 되는데 가자마자 바로 잤다.

, 공부 이론들을 죽 훑어 보면 쉬는 시간에 예습 및 복습을 하면 기억력이 극대화 된다는데 당시 우리에겐 너무나 사치스런 말이었다.

우리는 50분씩 미친 듯이 감기려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내고 쉬는 시간마다 무조건 잤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인 쪽잠들이 어떻게든 우리의 최소 수면 시간을 채워준 것 같다.

학교 책상에서 잔 시간이 집 침대에서 잔 시간보다 많을 정도니 그야말로 학교와 집이 바뀌는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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