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야 나도!
만약 내 글에 감명을 받고 곧바로 집에 콕 박혀서 공부만 하려는 학생은 그러려니 하겠지만 반대로 학부모가 자녀에게 이런 방식을 적용하려고 한다면 그건 참 멍청한 짓이다.
왜냐하면 당시 S고엔 있고 자녀에겐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고통을 함께 나눌 친구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학년이 올라가면 당연히 반도 바뀌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S고는 3년 내내 반을 바꾸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것은 S고의 거지 같은 정책 중 그나마 탁월한 결정이었다.
일단 3년 내내 같은 놈들만 모여 있으니 딱히 새로운 친구를 사귈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다.
또 3년이나 같은 얼굴을, 그것도 하루 17시간을 보고 있으니 징글징글하다 못해, 없던 동지애도 생겨난다.
갖은 부조리와 빠따를 맞으며 고통이 커질수록 우정도 깊어졌다.
반 1등이나 꼴등이나 공평하게 빠따를 맞으니 인류애가 생겼달까?
아무리 시련이 힘겨워도 그 시련을 함께 나눌 동지가 40명 이상 있다면 어떻게든 버티게 마련이다.
혼자였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했을 터.
아쉬운 점은 당시 휴대폰이 없어서 그 때 친구들 연락처를 아직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점 하나가 못내 아쉽다.
서울대 간 친구의 비법
나는 시골 출신인데 우리 동네에 정말 공부 잘 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형이 있었다.
시골 학교에선 간판 스타나 마찬가지였는데 그 형이 전학 간다고 할 때 교장까지 바짓가랑이 잡고 말릴 정도였다. (물론 내가 전학 갈 땐 프리패스)
그런데 그런 형도 서울대를 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나온 사람이면 공감하는 것이 있다.
1학년 때는 ‘열심히 하면 서울대는 무리더라도 연고대는 가겠지.’
2학년 때는 ‘그래도 서울에 있는 학교는 가겠지?’
3학년 때는 ‘제발 4년제 아무데라도…’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 알게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나 또한 1학년 때 지망 학교 합격 가능성에 국립대도 합격이 어렵다고 나와서 좌절 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 학원에서 얼굴도 못 본 그 특별반 얘들도 서울대는 몇 못 갔을 거다.
그렇다면 이 빠따에 미친 일반(?) 학교에선 어땠을까?
우리 반만 놓고 말하자면 결과는 놀라웠다.
무려 서울대 1명, 고려대 1명 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엔 그 2명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볼까 한다.
내가 앞전에 유일하게 수업을 잘 가르친 선생이 있었다고 했는데, 특이하게도 그 과목은 국영수가 아닌 세계지리 과목이었다.
세계지리는 사회탐구 영역 중 선택과목에 불과하다.
선택 과목은 윤리, 세계지리, 그리고 뭐 기타 등등이 있었는데.
S고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세계지리를 선택할 정도로 이 세계지리 선생의 수업은 백미였다.
당시 첫 수업에 들었던 선생님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세계 지리는 초반엔 어렵지만, 일단 기초만 떼면 가장 쉬운 과목이다.”
선생님 말대로였다.
초반에 듣도 보도 못한 개념들로 인해 멘붕이었지만 그것만 기억하면 그 다음부턴 탄탄대로였으니 말이다.
그 선생님 덕분에 선택 과목 시험은 전혀 떨리지도 않았고 실제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선생님 말로는 초반에 장벽이 높으면 학생들이 기피하게 되고, 그런 과목들은 시험을 쉽게 내기 때문에 점수를 내기 쉽다고 했었는데 딱 들어맞았다.
실제로 다른 학교 학생들이 선택 과목으로 세계 지리를 선택하는 경우는 꽤 낮았으니 말이다.
제2외국어로 치면 일본어 시험은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 상대적으로 시험을 어렵게 내지만, 아랍어 시험은 응시자가 거의 없어 매우 쉽게 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던 중 사건이 일어났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 도중에 질문을 하나 했는데 반 1등도 만족스런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딱 한 명이 논리적으로 선생 입맛에 딱 들어맞는 대답을 내논 것이다.
선생은 굉장히 만족했는지, 바로 그 녀석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너, 나랑 지리 쪽으로 서울대 가 볼래?”
당연히 녀석은 콜을 했고, 그 다음부터 따로 선생님이랑 같이 다니면서 무슨 대회도 나가서 상도 몇 개 타왔다.
그렇게 내신이랑 대외 점수를 모으더니 수시 점수로 서울대를 가버렸다.
수능도 안 보고 서울대를 간 거다.
물론 지리 쪽 학부이긴 했지만 그래도 서울대가 아닌가.
당시 부러움 반 시기 반으로 다른 녀석들이 많이 축하를 해 준 게 기억난다.
학부모들이 입시 전략 설명회를 들으러 구름 같이 몰려 다니고 하는 모습을 보면 그 녀석 생각이 난다.
어떻게 계획을 세우느냐에 따라 효율적으로 명문대를 가는 방법이 있다는 걸 눈으로 직접 목격했으니 말이다.
참고로 서울대 간 녀석은 우리 반 3-4등 정도로 기억하는데, 우리 반 1등은 고려대를 갔다.
당시 두 녀석에 대해 돌이켜보자면 머리가 좋긴 했지만 그렇다고 엄청 좋은 것도 아니었다.
약간 똑똑한 정도?
천재 보다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범인에 가까웠다.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외계인 같은 존재와는 안드로메다 은하만큼 거리가 멀었다.
하나를 물으면 열을 답하는 천재는 전혀 아니었고 우리처럼 잘 졸았고 매도 부지런히 맞았다.
이제 와서 서울대 학생으로 취급(?)해 주기에는 이미 서로 못 볼꼴을 많이 봤달까?
그때서야 명문대생에 대한 환상 같은 게 많이 가신 것 같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이큐 테스트 같은 게 얼마나 부질 없는 지 잘 알고 있고(조금만 공부해서 패턴만 외우면 150은 찍는다) 그 아이큐 점수가 사람의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애초에 아이큐 테스트 자체가 독일 나치의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 같은 우생학에서 비롯된 거고, 당시 나치에서 140이상 맞은 사람들을 따로 표본으로 모아 후속 연구까지 했지만.
딱히 아이큐가 높다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나오진 않아서 연구는 흐지부지 되었다.
그러니 서울대생이라고 뭔가 특별한 사람일 거란 환상은 버렸으면 좋겠다.
솔까 나이 먹으면서 사짜 직업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이 봤는데, 자기 분야에선 빠삭하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나는 어떻게 S대를 가게 되었는가?
사실 S대는 서울대가 아니라 성균관대학교다.
아쉽게도 평범한 중학교에서 평균 70점대 였던 내가 서울대를 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현실적이지 않은가?
우선 어떻게 내가 그런 점수를 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분석해보자.
먼저 나는 언어 영역에 대해 강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반 1등인 K군도 모의 고사가 끝나면 언어 영역만큼은 나한테 물어볼 정도로 내 언어 점수는 특별했다.
120점 만점인 시험에서 어쩔 땐 116점까지 받아봤을 정도니 말이다.
물론 1학년 때부터 잘한 건 아니고 3년의 야자 내공이 쌓이면 과목별로 잘 하는 게 저절로 드러나고 나 같은 경우 그게 언어 였을 뿐이다.
굳이 비법을 말하자면 어릴 때 영향이 큰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책장을 가득 채울 만한 책을 선물해주셨고, 나는 그것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어휘력이 늘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경제적 사정으로 같은 책을 몇 년간 읽었던 것 뿐.
계속해서 새로운 책이 공급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본 책을 계속 반복해서 읽었고 그 때 쌓인 기본기가 고등학교에 와서야 꽃을 피웠다고 짐작한다. (중학교 때 내 국어 점수는 7-80점대였다)
나는 언어, 수리, 사회 탐구, 영어 점수로 대학을 갔는데 언어 점수 외에는 사실 조금 평범했다.
언어는 1등급이었지만 그 외 과목은 2에서 3등급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실 성균관대를 가기에는 조금, 아니 많이 부족했다.
내 실력으로는 잘 해봐야 국립대 정도가 한계였다.
하지만 수능날 기적이 일어났다.
허나 그 기적은 S고에서 빠따로 단련된(?) 내 정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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