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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 0원으로 S대 간 썰 -5-

by 멀티84 2024. 7. 1.

 

 

수능 날 일어난 기적

 

솔직히 나는 일찌감치 재수를 생각할 정도로 딱히 점수가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재수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었기에 조금 긴장을 풀고 수능을 봤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나는 언어만큼은 자신있었고 단 한 번도 시간 조절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막상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수능 날 시간 조절에 실패했다.

좀 어렵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문을 3개나 못 본 것이다.

지문 하나 당 2-3문제니 거의 8문제를 아예 보지도 못하고 찍어야 했던 것이다.

이건 그냥 확률의 문제라 그냥 3번으로 통일해서 OMR 카드를 제출했다.

아마 평범한 학생이라면 가장 자신있는 과목에서 이렇게 망치는 순간 멘붕이 왔을 것이다.

게다가 언어 영역은 하필 가장 첫 과목이라 치명적이었다.

그런 정신 상태에서 그 다음 과목인 수리, 사회, 과학, 외국어를 잘 풀 수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딱히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냥 마음 편하게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태평한(?) 생각을 했다.

S고에서 하도 맞다보니 나중엔 에이 까짓 거 시원하게 한대 맞지 뭐.’

이런 사고 방식에 가까웠달까?

하지만 이런 낙천적 사고가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아무 흔들림 없이 나머지 시험들을 소화했고 나머지 과목들은 평소 컨디션으로 봤으니 말이다.

다행히 언어 외에 나머지 과목들은 평소와 난이도가 비슷했다.

수능이 끝나고 가채점을 했는데 찍은 문제 중에 2문제를 추가로 맞았다.

천만 다행으로 실력으로 푼 문제들은 1개 정도 틀리고 말이다.

그렇게 최종 점수는 120점 만점에 101.5 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시간 조절은 실패했지만 노력한 만큼은 나왔네

하는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담임한테 전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수화기 너머로 담임선생이 피곤한 목소리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ㅇㅇ아. 너 점수 좀 불러봐.”

, 언어는 101.5고요…”

잠깐, 뭐라고?”

“101.5. 왜요?”

나는 이어지는 담임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 니가 지금 언어 1등이야!”

그랬다.

당시 내가 본 수능은 불수능이라고 할 정도로 난이도가 엄청나게 빡셌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딱 한 과목만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는데 그게 바로 언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교육부에서 난이도를 대폭 말아먹는 바람에 1교시 언어 영역 끝나고 난리가 났더랜다.

멘탈이 나가서 나머지 과목을 망치는 건 애교였고, 어떤 학교 전교 1등은 1교시 시험이 끝나자마자 자존감이 무너져서 나머지 시험을 포기하고 집에 갔더란 소문이 쫙 돌 정도였다.

덕분에(?) 평년 수능점수보다 당시 평균 점수가 마이너스 30-40점대를 기록할 정도였다.

나는 수능이 끝나고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참고로 수능은 변환 점수를 채택하는데, 변환 점수란 난이도에 따라 점수를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내 언어 영역 점수인 101점은 상위 1퍼센트로 인정되어 120점 만점에 118이라는 미친 변환 점수를 기록하고 만다.

나머지 과목들은 평소 나오던 점수와 비슷했지만 멘탈이 무너져 시험을 망친 수험생이 많아 오히려 득을 보았고 나는 그렇게 생각도 못했던 성균관대학교에 상위 50퍼센트로 합격하게 되었다.

상위 50퍼센트란 100명 중 50등 정도의 성적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국립대 조차도 첫사랑 님처럼 바라보던 나에게 기적이 찾아온 것이었다.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하는 이유

 

솔직히 말해서 성대에 들어갈 수 있는 점수를 받은 건 운이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난이도가 평범하게 나왔으면 국립대도 간신히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성대에 들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성대는 수능 점수와 논술 점수를 합산하여 입학생을 뽑았다.

수능이 끝나고 논술을 준비할 시간이 한 달 가량 주어지는데 나는 이 기간을 그냥 쌩으로 놀았다.

만약 담임이 따로 논술을 준비하라고 하던가 했으면 모를까 이미 수능이 끝나고 다들 3년 간의 노예, 아니 수험생이 끝난 지라 축제 분위기인데 그냥 휩쓸렸던 것 같다.

아마 어머니가 아셨다면 논술 학원이라도 등록해주셨을 텐데, 당시 나는 공부라면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일부러 알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내리 놀고 서울에 있는 성대 캠퍼스로 갔는데

솔직히 조금 자만하고 있었다.

아마 담임도 내게 따로 논술 준비를 안 시킨 거는 본인의 무지도 있었지만 내 성적이 왠만큼 논술을 망치지 않고서야 합격이 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시험날 최선을 다해 답안지를 빼곡히 채우긴 했지만, 결국 떨어졌다.

아마 열심히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출제자가 원하는 방향과 답을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서술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적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마 다른 이 같았으면 눈물을 쏟았을 텐데, 나는 태연했다.

아마 타고난 기질이 느긋해서 인 것 도 한 몫 했을 거다.

당시 내 생각은, ‘아유, 어차피 집에서 3시간이나 걸리는데 그러려니 하자.’ 정도에 가까웠다.

요즘 학부모가 본다면 비명을 지를 만큼 태평한 생각이었다.

사실 이런데도 내가 느긋했던 데에는 다른 대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까운 아주대가 그 대안이었다.

게다가 아주대는 장학금까지 준다고 했으니 대안으로 나쁘지 않았다.

집에서 가깝고 나름 명문대고 장학금까지 준다니 얼마나 좋은가?

사실 지금이야 아주대의 위상이 엄청나게 떨어졌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10위권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한 때 20위권까지 내려가서 마음이 아픈 모교였는데 2024년 현재는 16위권에 랭크되어 있으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참고로 성대는 5위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내가 굉장히 안타까워 하지 않을까 동정의 시선을 보낼 수도 있는데, 사실 그런 건 전혀 없다.

물론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으면 당연히 하숙을 했을 테고, 그러면 내 학창 시절이 더 재밌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이 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쓰인 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딱히 성대를 갔다 하더라도 내 인생이 달라졌을 거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기에 아쉬운 점은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되겠다.

다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당시에도 알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것들이 아쉽다.

예를 들어 속독법이라던가 암기법 같은 것들 말이다.

 

속독법과 암기법

 

성인이 되어서도 글 읽는 것을 좋아하여 우연히 속독법을 배우고 그게 도화선이 되어 수많은 책을 보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내 독서의 많은 분량을 웹소설이 차지하긴 했지만 그래도 평범한 사람보다는 훨씬 많은 책을 읽었다.

한 달에 10권을 읽을 때도 있고 30권을 읽을 때도 있는 데 평균 20권 정도 읽는 것 같다.

. 물론 웹소설은 뺀 양이다.

웹소설이야 날 잡고 읽으면 하루에 10권도 거뜬하니 뭐

한국인의 60퍼센트가 1년에 책 한 권 안 읽고, 1년 평균 독서량이 3.9권이라고 하는 데, 개인적으로 믿기지는 않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약간 과장해서 일반인보다 100 많은 독서를 하고 있는 셈이다. (웹소설을 포함하면 400…?)

속독은 쉽게 말해 눈으로 슥 훑어보는 것을 말하는데 일반인도 조금만 훈련하면 쉽게 익힐 수 있다.

그냥 점으로 된 종이 하나만 있으면 쉽게 훈련할 수 있으니 말이다.

, 참고로 속독 학원에서 속독에 도움 된다고 안구 운동 같은 거 시키는 데 그건 그냥 시간 낭비다.

이미 안구 운동과 속독하고는 별다른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게 여러 대학 연구에서 발표한 내용이니.

사실 속독 자체가 의심 받는 데 더 말해 무엇 하랴.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속독 능력을 고등학교 때 가지고 있었으면 언어 공부에 힘을 덜 썼을 텐데 하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딱히 학벌에 미련은 없으니 지금이라도 속독을 한 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 그러고보니 10년도 전에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증 땄는데, 속독으로 재미를 좀 보긴 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암기법이다.

개인적으로 속독책 말고 암기책도 여러 권 읽었는데 이것도 속독이랑 비슷하게 알맹이가 없는 책도 있었고 정수가 담긴 책도 있었다.

사회탐구 쪽을 공부할 때 암기가 필수 인데 이 암기법을 알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암기력이란 말이 있는데 암기력의 력은 힘을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암기력이란 말은 틀린 말이다.

한 학자가 암기력도 근육처럼 늘리는 게 가능한 지 실험을 해 보았다.

그래서 매일 성경의 한 구절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 학자의 이론에 따르면 첫 번째 날 한 구절을 외울 때보다 백일 째 되는 날 한 구절을 외울 때 더 암기가 잘 되어야 한다.

매일 매일 암기를 했으니 암기력(?)도 늘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암기라는 것이 매일 뭔가를 암기한다고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학자는 백일이 지나도 여전히 성경 구절을 외우는 것이 어려웠고 시중에 암기법들을 찾아본 후에야 의문이 풀렸단다.

몇 가지 법칙을 알면 암기도 쉬워지는 것을 말이다.

거꾸로 말해 법칙만 좀 알면 암기가 몇 배로 쉬워진다는 것이다.

하나마 예를 들어, 이런 숫자가 있다고 치자.

35454207847852485560

20자리의 숫자를 외우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솔직히 나도 암기법을 알지 못했다면 1시간이 걸려도 계속 헷갈렸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을 알면 몇 분 내로 정확하게 외울 수 있다.

사실 비밀은 간단하다.

암기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00부터 99까지 따로 이미지를 만들어 놓는다.

즉 위 20자리의 숫자는 2자리 수 10개로 구분 가능하다.

내 식대로 하면 위 숫자는 이렇게 된다.

황진이/사오정/싸이(강남스타일)/손흥민/기안84/칠판/오이(야채)/사파리버스/요요/할머니

이 순서가 헷갈릴 수 있는데 이것은 공간과 연결시키면 순서와 위치가 정확해진다.

예를 들어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현관부터 시작해서 10곳을 눈 닿는 데로 지정하면 된다.

내 경우엔 현관/ 현관 앞/ 현관 오른쪽 화장실/현관 앞 침실/ 침실 앞 복도/ 서재/ 거실/ 주방/ 안방/ 안방 화장실이 된다.

이 위치와 숫자들을 결합시키면 금세 외울 수 있다.

실제로 내게 익숙한 장소와 매칭 시키면 굉장히 쉽게 외워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맛보기에 불과하고 정말 수많은 암기법들이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방법들이 최근에 나온 것들이 아니라 이미 몇 십년 전에 나왔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속독, 암기법에 관련된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사실은 이미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들은 이미 수많은 천재들이 나름대로 답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읽으려고 하지 않았기에 몰랐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 말도 몇 백 년 전 말 같지만, 사실 3천년 전 솔로몬 대왕이 한 말이다.

3천 년 전이면 아무 것도 없을 시절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이런 한탄을 할 정도로 새로운 지식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궁금했던 것들은 이미 천재들이 답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그걸 알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인류는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했고 역사에 비극으로 남아 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는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다.

사족이 길었는데 속독법과 암기법, 이 두 가지를 그 때 몰랐던 게 조금 아쉽긴 하다.

 

좋은 대학을 가는 방법

 

이것 말고도 아쉬운 점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그냥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아무 정보도 없는 그 시대에 맨땅으로 헤딩한 것 치고는 나름 대박을 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중학교에서 평균 80점도 못 넘기던 내가 명문대 장학생으로 간 것만 해도 대단하지 않나?

그것도 사교육비 0으로 말이다. (공인중개사도 그냥 책만 보고 합격했다)

라떼는, 같은 김부장 소리를 하고 싶어서 이런 글을 쓴 게 아니다.

오히려 나와 비슷한 환경을 갖고 있을 지 모르는 학생들과 그 부모들을 위해 쓴 응원의 메시지에 가깝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순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순 없다는 말이 있다.

내가 나온 S고는 나 같은 말을 단체로 데려다가 물을 먹을 때까지 때린 것에 가깝지만 그래도 억지로 환경을 만들어 준 덕분에 나 같은 게으름뱅이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평생 맞을 매를 한 번에 때려준 S고지만 지금은 딱히 원망은 들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얘를 그렇게 때리는 건 원시적인 발상 아니야?’

지금 체벌을 옹호하는 거야?’

묻는 다면 나는 적절한 회초리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세대한테는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 그런지 내가 나온 S고도 변화를 맞이했다.

체벌은 당연히 없어졌고 강제로 하던 야간 자율 학습도 없어졌다.

그리고서울대는 일 년에 한 두명을 간신히 보내는 그저 그런(?) 학교가 되어 버렸다.

아마 지금 S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우리 학교가 서울대를 20명씩이나 보냈다고?하면서 놀라워하겠지만 말이다.

아마 이것이 자유의 대가(?)이지 않을 까 싶다.

우리 때야 농담으로 신입생 불쌍한 유형 1위가 ‘S고 들어왔다고 좋아하는 신입생들이었으니

입학식 첫날부터 빠따를 맞을 게 눈에 보이니 불쌍해 보였지, .

몇 번이나 말하지만 체벌은 혹독했지만 굉장히 공평하게(?) 이루어졌다.

우리 반 1등도 서울대 들어간 녀석도, 수시로 맞는 걸 3년 간 생생하게 봐왔기에, 명문대생에 대한 환상 같은 건 무너진 지 오래다.

좋은 대학교를 가냐 못 가느냐는 공부 머리가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비싼 학원을 간다고 되는 게 아니다.

본인의 의지와 그걸 뒷받침해줄 환경이 99프로를 차지한다고 본다.

나 같은 경우 S고가 그런 환경이었을 뿐이다.

요지는 어떻게든 공부밖에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글자 하나라도 더 들여다 보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만 모아놓은 곳에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래서 학군이란 게 있고, 농어촌 특별전형도 있는 거고)

비용 때문에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부모가 같이 책상을 붙이고 공부해라.

그게 아이 공부에 더 좋을 수도 있다.

오히려 비싼 사교육비 때문에 맞벌이 하느라 아이 얼굴 볼 시간도 없다면 주객이 전도 된 거다.

차라리 사교육비를 줄이고 아이와 30분씩 대화하고 응원해 주는 게 아이 정서에 좋다.

마지막으로 좋은 대학만 가면 고생 끝이다, 라는 순진한 생각도 버렸으면 한다.

모두가 원하는 대기업은 명문대 간판 하나로 들어가긴 너무 힘들고, 또 그렇게 들어갔다 하더라도 평생 직장은 요원하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공부는 대학교 나왔다고 끝이 아니었고 계속해서 공부 하지 않는 사람은 시대에 뒤처지는 모습도 적지 않게 보았다.

다행히도 나는 꾸준한 독서로 여러 직업을 거쳤고 지금도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기대가 크다.

여기까지 읽어 준 전국에 있는 모든 학부모들, 그리고 학생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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